우리아이가 8살때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에놀러갔다 지하주차장으로 오는길에 뜻하지않게 에스켈리어터앞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 하얀옷을 입으시고 머리를 묶으신 ~~ 아주 멋진모습이었어요..... 제가 평소존경하던 선생님을 뵙고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무례하게 선생님 팔목을 턱 잡고 "선생님 ! 팬입니다 여긴 어쩐일로~~~!!!"
지금생각해도 참으로 무례했지요 ~~ㅎ
어떨결에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민망해서 주차장으로 가려하는데 선생님께서 옆에지인들에게
아이랑사진찍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하고 죄송했는지~~
지금그때아이가 18세가 되었습니다
뉴욕유학갔다 미국서 대학을가고싶다하여 다음달에 미국으로 아빠랑저도 함께 나가게되었습니다 선생님 소식도 늘 찾아보고 있고 항상 응원하는 한사람으로 선생님 너무도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그때는 이외수선생님이 누군지몰랐던 아들도 이제는 알고있으며 사진보며 그때 그할아버지(죄송합니다 너무순수해서 ^^~~)라며 좋아합니다
가슴속을 간지럽힌 꿈을 꺾지 못하고, 처녀 몸으로 일본을 건너가 죽을힘을 다해 제20대를 보냈습니다. 아침엔 대학을 가고, 저녁엔 야키니꾸 집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낸후 ,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고단했던 하루를 보상받았습니다.. 같이방을 썼던 선배의 텃세로 앉을 수도 없는 이층침대에서 내한몸 눕히고 선생님의 책을 읽고 또읽고... . 직장에서 이지메를 당하여 누군가 내 신발에 유리를 박았을때도, 다음날 뻣뻣이 고개들고 다시일할수 있었던건. 선생님의 책이였습니다....아무것도 아니다.. 이까짓건 일도 아니다...어두웠던 그시간 내가 선생님 작품을 버팀목삼아 버티었다면 거짓말이라 할것입니다. 내 20대는 선생님을 빼면 그저 숫자만 남습니다.
저는 지금 50을 넘었고, 뉴욕에서 사업하는 드센 비지니스 우먼이 돼었습니다. 선생님 소식을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5년만의 폭설로 거북이 운전을 하면서 내 20대를 되돌아 봤습니다... 폭설로 앞이 안보이는데 눈물도 멈추지않아 곤혹스러웠습니다.... 잘 버티어 주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칼로 누군가에게는 버팀목 이였습니다.
저의 모든 기억을 더듬어, 선생님과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해요. 조금씩 자주 쓰려구요.
마치 매일 찾아 뵙고 인사하는 것 같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기운나실 것 같아서요.
저는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기 전에 책으로 선생님을 만난 수많은 독자중의 하나였고, 1980년대에서 90년대 그 당시 지구 반대편 미국 내 방 책장에는 선생님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어요. 누구든 우리집에 손님이 오면 한 두권씩은 꼭 없어지는 선생님의 책들... 몇 번의 책도둑질을 당하고서 급기야 저는 이렇게 시뻘건 매직으로 써서 책장에 붙여놓았어요.
“내 책은 그 어느 누구도 빌려주지 않음”.
삼십년이 지났어도 그 문구를 기억해요. 얼마나 한이 맺혀서 써 붙여 놨었는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없어지는 들개, 꿈꾸는 식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은 심지어 1,2 권인데 두권이 한꺼번에!!! 학교 갔다 오면 없어져 있고 나는 또 사다 채워놓고. 어디 나갔다오면 또 없어져있고. 그 반복을 골백번은 했어요. 저희 집도 그렇게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었어요.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와서 어 이거 재밌겠다, 빼들고 읽다가 도저히 안돼겠다, 놓을 수가 없네, 들고 가야겠군... 해서는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날라버린 사람들을 제가 어떻하겠어요 흑흑
그리고, 선생님은 왠지 내가 찾아가도 만나 주실거 같다 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편지를 써볼까? 하며 책뒤의 출판사 주소를 보기도 했어요. 동문선 출판사. 반고호한테 그림그려 보내는 느낌이라 너무 조심스러워서 편지는 못썼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처음 선생님께 편지를 쓰네요...!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문학적, 예술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과 좋은 기운을 주신 분이세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제 맘은 변하지 않고요, 한결같은 선생님의 문학에 대한 마음처럼 독자들도 선생님과 선생님 작품들에 대한 마음도 그럴거예요.
저 편지 또 쓸거예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는거 같아요,
사건도 너무 많고, 드릴 말씀이 너무 많아요.
반고호한테 그림그려 보내는 느낌은 여전하지만...반고호가 아퍼누워계시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 기운난다면 매일 매일 그려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작가님이 편찮으신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별 일 없다는 듯이 앉은 자리 한번 툭 털고 일어나셨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오유에서 오랜만에 작가님 아이디의 게시글을 발견하고는 [역시 외수옹!!] 하고서 반가워 한 것도 잠시... 아드님께서 게시한 글이더군요.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내 속에서의 작가님은 어떤 일에도 쓰러지지 않는 대장님이었는데... 여즉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하셨다는 글내용에 마음 한 편이 짜르르~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인생이 두배는 더 재미나는 사람입니다.
작가님 글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쑥불쑥 보여주시는 강건하신 그 어투에서도- 회사에서 빡치게 굴렀던 날에 작가님께서 몇번이나 제 사표를 막아주셨는지 모르실거에요. 제 인생의 재미와 밥줄을 지켜주셨던 분이 작가님이십니다.
부디, 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셔서- 다시 한번 작가님의 건재함을 과시해 주십시오. 어둠의 다크에서 불어오는 죽음의 데쓰 같은 글에 [ 아 씨바...] 구수하게 욕하시는 댓글소리를 또 보고 싶습니다.
전 올해 50이 되는 남자입니다.
제가 선생님의 소설 '늑대'를 읽었을때가 19~21살 이때였던거 같아요.
그 전에는 그냥 불만 많은 어린 청소년이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때 그 소설을 읽고 무언가 내 뒷머리를 때리고 제 모든 감각이 눈을 뜨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삶이 달라졌어요.
모든것에 적극적이되고, 그냥 흘려듣지 않고...
그렇게 열씸히는 모르겠으나,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제 아내는 3년전 암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그 이후 너무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생각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힘드시겠지만 가족을 위해서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이제 선생님 혼자만의 삶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늘 가족에게, 주변의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언젠가 가시더라도 지금은 아님을 아셔야 해요.
언젠가 가실때는 건강하게 웃으면서 가실 수 있게 지금은 힘내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외수 선생님,
선생님은 어둡고 불안하기만 했던 제 20대의 등불이셨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선생님 책을 우연히 처음 읽게 되었던 그 날을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의논할 사람 하나 없었던 저에게 선생님의 글은 제가 20대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던 따뜻한 위로의 말이자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의지였습니다.
저는 오늘도 존버 하며 선생님께서 쾌차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거제도에서 박서하 드림.
우리아이가 8살때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에놀러갔다 지하주차장으로 오는길에 뜻하지않게 에스켈리어터앞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 하얀옷을 입으시고 머리를 묶으신 ~~ 아주 멋진모습이었어요..... 제가 평소존경하던 선생님을 뵙고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무례하게 선생님 팔목을 턱 잡고 "선생님 ! 팬입니다 여긴 어쩐일로~~~!!!"
지금생각해도 참으로 무례했지요 ~~ㅎ
어떨결에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민망해서 주차장으로 가려하는데 선생님께서 옆에지인들에게
아이랑사진찍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사하고 죄송했는지~~
지금그때아이가 18세가 되었습니다
뉴욕유학갔다 미국서 대학을가고싶다하여 다음달에 미국으로 아빠랑저도 함께 나가게되었습니다 선생님 소식도 늘 찾아보고 있고 항상 응원하는 한사람으로 선생님 너무도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그때는 이외수선생님이 누군지몰랐던 아들도 이제는 알고있으며 사진보며 그때 그할아버지(죄송합니다 너무순수해서 ^^~~)라며 좋아합니다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에 마음아파하고 저랑 선생님의 쾌유를 기도합니다
선생님~~어여 일어나세요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미국가서도 선생님 소식 챙기겠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셔서 다시 그 맑은 웃음 보여주세요
선생님 달력사서 갑니다
달력보면서 매일매일 선생님 생각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존~~~버 ♡
그간 격조했더니, 병상에 누워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중학생시절(80년대) 꿈꾸는 식물을 읽고,
온몸을 감아오는 끈적한 느낌(?)을 가졌던 소감을 기억합니다.
사부님싸부님의 유쾌한 철학, 자객열전의 흥미로운 전개와 결말도 좋았습니다만,
그 이외엔 선생님의 책을 접하지를 않았네요.
다름이 아니옵고, 병상에 누워계시니 적적하시고 심심하시다 생각되어, 예전 디씨에서
보았던 선생님의 위트넘치는 댓글이 있어, 오유에서 보고 혹시라도 못 보셨을까봐
댓글을 남깁니다. ㅎㅎㅎ
살짝 입가에 미소가 번지시길 바라면서...
얼른 쾌차하셔서, 또 젊은 세대들을 따뜻하게 봐주시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선생님이 젊은 세대들을 참으로 아끼고 좋아하신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저는 사실, 잘 안됩니다 ㅎㅎㅎ
부디 기운차리셔서, 가벼운 글이라도 간혹 남겨 주시면, 그저 고맙고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중에, '모든 사랑받은 것은 고통을 느낀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냥, 알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몇 줄 남겨보았습니다.
이외수 선생님 화이팅 !!!
강원도 춘천 없는집 장녀로 태어났습니나.
가슴속을 간지럽힌 꿈을 꺾지 못하고, 처녀 몸으로 일본을 건너가 죽을힘을 다해 제20대를 보냈습니다. 아침엔 대학을 가고, 저녁엔 야키니꾸 집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낸후 ,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고단했던 하루를 보상받았습니다.. 같이방을 썼던 선배의 텃세로 앉을 수도 없는 이층침대에서 내한몸 눕히고 선생님의 책을 읽고 또읽고... . 직장에서 이지메를 당하여 누군가 내 신발에 유리를 박았을때도, 다음날 뻣뻣이 고개들고 다시일할수 있었던건. 선생님의 책이였습니다....아무것도 아니다.. 이까짓건 일도 아니다...어두웠던 그시간 내가 선생님 작품을 버팀목삼아 버티었다면 거짓말이라 할것입니다. 내 20대는 선생님을 빼면 그저 숫자만 남습니다.
저는 지금 50을 넘었고, 뉴욕에서 사업하는 드센 비지니스 우먼이 돼었습니다. 선생님 소식을 듣고 아차 싶었습니다. 5년만의 폭설로 거북이 운전을 하면서 내 20대를 되돌아 봤습니다... 폭설로 앞이 안보이는데 눈물도 멈추지않아 곤혹스러웠습니다.... 잘 버티어 주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칼로 누군가에게는 버팀목 이였습니다.
.... 잘 버티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싸랑하는 선생님, 멍구사랑 이시원이예요.
저의 모든 기억을 더듬어, 선생님과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해요. 조금씩 자주 쓰려구요.
마치 매일 찾아 뵙고 인사하는 것 같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기운나실 것 같아서요.
저는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기 전에 책으로 선생님을 만난 수많은 독자중의 하나였고, 1980년대에서 90년대 그 당시 지구 반대편 미국 내 방 책장에는 선생님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어요. 누구든 우리집에 손님이 오면 한 두권씩은 꼭 없어지는 선생님의 책들... 몇 번의 책도둑질을 당하고서 급기야 저는 이렇게 시뻘건 매직으로 써서 책장에 붙여놓았어요.
“내 책은 그 어느 누구도 빌려주지 않음”.
삼십년이 지났어도 그 문구를 기억해요. 얼마나 한이 맺혀서 써 붙여 놨었는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없어지는 들개, 꿈꾸는 식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은 심지어 1,2 권인데 두권이 한꺼번에!!! 학교 갔다 오면 없어져 있고 나는 또 사다 채워놓고. 어디 나갔다오면 또 없어져있고. 그 반복을 골백번은 했어요. 저희 집도 그렇게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었어요.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와서 어 이거 재밌겠다, 빼들고 읽다가 도저히 안돼겠다, 놓을 수가 없네, 들고 가야겠군... 해서는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날라버린 사람들을 제가 어떻하겠어요 흑흑
그리고, 선생님은 왠지 내가 찾아가도 만나 주실거 같다 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편지를 써볼까? 하며 책뒤의 출판사 주소를 보기도 했어요. 동문선 출판사. 반고호한테 그림그려 보내는 느낌이라 너무 조심스러워서 편지는 못썼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처음 선생님께 편지를 쓰네요...!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문학적, 예술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과 좋은 기운을 주신 분이세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제 맘은 변하지 않고요, 한결같은 선생님의 문학에 대한 마음처럼 독자들도 선생님과 선생님 작품들에 대한 마음도 그럴거예요.
저 편지 또 쓸거예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는거 같아요,
사건도 너무 많고, 드릴 말씀이 너무 많아요.
반고호한테 그림그려 보내는 느낌은 여전하지만...반고호가 아퍼누워계시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 기운난다면 매일 매일 그려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싸랑하는 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미소지으셨다면 오늘 미션은 성공!
작가님이 편찮으신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별 일 없다는 듯이 앉은 자리 한번 툭 털고 일어나셨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오유에서 오랜만에 작가님 아이디의 게시글을 발견하고는 [역시 외수옹!!] 하고서 반가워 한 것도 잠시... 아드님께서 게시한 글이더군요.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내 속에서의 작가님은 어떤 일에도 쓰러지지 않는 대장님이었는데... 여즉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하셨다는 글내용에 마음 한 편이 짜르르~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인생이 두배는 더 재미나는 사람입니다.
작가님 글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쑥불쑥 보여주시는 강건하신 그 어투에서도- 회사에서 빡치게 굴렀던 날에 작가님께서 몇번이나 제 사표를 막아주셨는지 모르실거에요. 제 인생의 재미와 밥줄을 지켜주셨던 분이 작가님이십니다.
부디, 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셔서- 다시 한번 작가님의 건재함을 과시해 주십시오. 어둠의 다크에서 불어오는 죽음의 데쓰 같은 글에 [ 아 씨바...] 구수하게 욕하시는 댓글소리를 또 보고 싶습니다.
20년 전입니다.
사춘기 시절을 살아가던 저에게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을 책으로 만난 날이요.
이렇다 할만한 정착을 하며 살지 못하며 아직도 사춘기, 어쩌면 회춘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저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외수 선생님께서 병상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 켠에 두고 잊었던 글의 추억들을 되새겨봅니다.
선생님의 쾌차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유에서 간간히 소식을 봤었는데 오늘 아드님이 남긴 글보고 편지 씁니다
작가님의 촌철살인과 해학어린 글이 무엇보다 그립습니다
올 한 해를 휩쓴 코로나도 이제 백신이 개발되어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회복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기원이 치료제가 되어 예전과 다름없는 호탕한 모습을 뵐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간병하는 가족분들도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먼저 저는 올해 47세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작가님을 알게 된건
중학교 2학년 까까머리 시절
부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도덕 여선생님을 통해서 였습니다
선생밈이 추천해 주신 책은 이외수 작가님의 '칼'이라는
장편 소설 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슴에 칼 하나는 가지고 있다던 문구가
섬득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때의 저는 내성적이고 남자 중학교에서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선생님의 작품을 만나고 들개... 훈장... 등등
작가님 작품을 가슴으로 읽으며 사춘기를 넘어
성인이 되어 갔던것 같습니다
작가님 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참 마음이 아픔니닫
부디 완쾌 하셔서 사회를 향한 촌철 살인의 말씀도
SNS를 통해 보고 싶고
작가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습니다
두서 없이 적었지만
제 인생에 가장 강렬한 인상울 주신건
단연 작가님 작품 이었으며
항상 그리워 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쾌차 하시고
항상 좋은 일만 함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칼... 훈장... 둘개. .벽오금학도.... 중학생 사춘기 였던
독자 올림
벽오금학도 부터 즐겨 읽던 독자입니다
정말 벽오금학도는 몇백번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세월호 광장에서도 자주 뵙고
했었는데
갑자기 않좋은 소식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부디 쾌차하셔서 다시 좋은 글들로 돌아와 주세요
기도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