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아실려나 모르겠습니다. 대전에서 마루와 천애객 이렇게 자주 뵈러 다녔는데 거의 2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을 하실런지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참 기억에 남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자주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매체를 통해 선생님 소식을 세심히 들었습니다. 작년에 모임을 하며 성호 형님과 화천의 감성공원으로 뵈러 갔었고 금년초 대전에 사인회로 오셨을 때 잠시 뵙기도 했었습니다. 병환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절이 시절이라 찾아뵙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응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한가지 소식을 드릴 일은 제가 이번에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무예소설문학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3년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은 이전부터 써오기는 했었지만 소설을 본격적으로 쓴 것은 3년전 대전지역의 문학동인에 가입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예전부터 써온 글쓰기에 집중하고자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오다가 이번에 응시하게 되었고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네요.
소설을 쓰면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생각이 없던지라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듣지는 않았으나 밤을 새면서 언듯언듯 들었던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이며 창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들이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인연때문이었을까요? 저 역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은 조선 후기 무인이었던 백동수의 삶을 그린 단편소설입니다. 제목은 "기린을 베다" 입니다. 여기에 백동수가 호흡수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에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용호비결을 넣었습니다. 직접 수련을 하셨던 것이라며 이야기 해주셨는데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작품에 썼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예전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격외선당에서 밤을 새며 놀았던 시간들, 그때 만났던 좋은 인연들이 생각나 한동안 깊은 회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추억은 때로는 힘이 됩니다. 소설을 쓰면서 선생님과 그리고 그때 만났던 인연들과의 추억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저를 계속 쓰게 했습니다. 어쩌면 소설만이 아니라 살아온 내내 그 추억이 힘이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든 시간이 많았던 저에게 즐거웠던 추억이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들 중에 하나였으니까요.
선생님께도 그런 추억이 계시겠지요. 좋은 인연들과 맺었던 기쁘고 즐거운 추억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 힘으로 투병생활을 계속하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디 그 힘으로 잘 견디시고 또 건강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버티면 이긴다는 존버정신으로 잘 버티시고 승리하시길 응원합니다. 회복하시어 예전처럼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제가 쓴 다른 소설들도 봐주시면 좋겠네요. 그런 날들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대학생인 아이 초등학교 1학년때 강원도 화천으로 선생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대전에서 세아이를 엎고 두아이 등에 배낭을 메어주고 고속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는 지인도 화천의 이기자 부대에 직업군인으로 계시는분이 계셔서 하루 머물고 선생님 뵈러 가려고 머문것이 새벽에 허리 만큼이나 수북 수북 쌓인 눈에 발이 묶어 4일 동안이나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결국 선생님은 뵙지 못하고 대전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는 어릴적 그때 그기억이 엄청나게 많은 눈을 본것이고 그시절 가수 god의 김태우 님이 멀리서 눈 치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랍니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님 보러 갈려고 버스를 질리도록 탄 기억이지요~
아~지금은 고등학생인 저희 아들은 그때 버스안에서 음료수병에 소변을 봤던 기억까지도 저희에겐 좋은 추억이랍니다.
소설 한 줄 쓰는데 한참 고민하다, 문장이 안 떠오르면 컴퓨터를 꺼버리던 게으른 청년입니다. 모월당에서 글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타지 생활이 두려워 문하생 신청도 못 한 겁쟁이 청년입니다.
하지만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라는 신간을 보며 문득. 글로 이룰 거 다 이룬 분까지 아직도 창작욕을 불태우는 모습에 동경심과 더불어 스스로 부끄러워져서 그만. 천천히 글을 쓴 지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문장 하나하나에 영혼을 담으려 노력한다는 말씀을 아직 기억합니다.
저는 3년 동안 드디어 상업 작가의 길을 뚫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바라는 세속적인 욕망과, 그 욕망을 묘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문장,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평생 작가 소리 못 들어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외수 선생님의 영향 덕분이겠지요.
제 등불 같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쓰러지셨을 땐 많이 놀랐습니다. 모든 저서를 다 살 정도의 열혈작가를 자처하면서도, 한 번도 찾아뵈지 못 한 죄스러움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완쾌하셔서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오실 때, 반드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세계 각지에 퍼진 전염병으로 흉흉한 세상. 만남이 잠깐 미루어졌을 뿐이라 생각하렵니다.
선생님.
다음 해, 전염병이 정복 되고 세상의 흉흉함이 가실 쯤. 그때쯤엔 부디 완쾌하셔서 웃으면서 뵈어요!
이외수 선생님 ......
투병중이시란 소식은 아주 예전에 뉴스를 통해 접하였으나 모르는 사이 툭툭 일어나 계신 줄 알았습니다
오늘의 유머에서 아드님의 글을 통해 선생님의 근황을 접했습니다
십년 전입니다
이천일십년 초겨울 득남을 앞둔 제가 생판 모르는 이외수 선생님께, 갓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십사 트위터를 통해 부탁드리면 뭐라 하실까 혼자만의 유쾌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어주시면 길가다 횡재해 감사할 일이고, 사양의 트윗이라도 거론만 해주시면 또한 기념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심 기대의 시간이 지나고 아들 녀석도 이름이 필요하여 "산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녀석이 올 해 지난달에 딱 십년이 되었군요
제가 부탁드린 몇 개월이 지난 한참 후 선생님께서 트윗으로, 내게 작명을 부탁하는 트친이 많으나 남의 이름을 지어주는것은 그의 인생에 관여하는것이라 너무 부담스러운일이다. 이런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다 라는 취지의 트윗을 올려주셨습니다
이 트윗은 저를 지정하신 글은 아니지만 저는 이글이 제게 주신 글이라 혼자 억측하고 단정하며 아들 이름을 떠올리면 그 과정속에 귀속하고 있습니다
일년이면 쉴만큼 쉬셨습니다
이제 고만 일어나십시요
다음번 북 사인회에 제 아들녀석 이산하군과 찾아 뵙겠습니다
그땐 꼭 알아봐 주십시요
이명학 올립니다
학창시절 작가님 작품을 즐겨읽던 평범한 아줌마 입니다.
늘 미소 띤 모습을 미디어에서 뵈었는데 편찮으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어른으로써 가끔 일갈하시는 말 한마디에 속시원해하고
때론 시원하게 웃 기도 했는데..건강이 많이 상하셨다니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제 주변에도 비슷한 병치레 하는 분도 있어서 남의 일같지 않네요.
아드님의 속상한 마음도 짐작 되고요..
그래도 작가님 강단 있으신 분이니 꼭 털고 일어나시리라 믿습니다.
작가님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지는 잘 아실겁니다.
직접 대면해서 응원해 드릴순 없지만
이작가님을 열렬히 응원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다는것 알아주시고
얼른 쾌차하셔서 또 좋은 책 내주세요.
우리 젊은이들이 이작가님 작품 오래오래 읽고 슬기로운 세대가 되길 바랍니다.
또 방문하겠습니다. 꼭! 꼭! 쾌차하세요!!!!!약속!!!!!!!!!
선생님의 벽오금학도에서 '편재'라는 단어를 알게되었습니다.
편재
20여년도 더 전에 군생활을 할 당시 저는 군대라는 이상한 조직 안에서 그간의 삶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놓여져 괴리감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훈련 출동 아침 포가 놓여있는 포상에 업드려 사주 경게를 하던 도중 총구 끝 풀잎 끝에 맺힌 이슬안에 온세상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 선생님이 쓰신 '편재'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쾌차하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학창시절 작가님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님이 저의 추억의 한 켠을 쌓아주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작가님 꼭 다시 건강해지셔서,
우리의 마음에 봄바람 같은, 상긋함이 묻어나는 글들을 다시 써주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응원하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는
저만 사랑하지 않는
선생님을
저도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강녕을 기원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만나뵙는게 소망이였던 한 사람입니다 근데 먹고살다보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아프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먹먹하고 가슴이 답답해져 오랫만에 눈물이 왈컥쏟아졌습니다 사실 울고싶었는데 핑계삼아 흘린 눈물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렇듯 항상 힘을 주셨는데 해드릴 수 있는게 편지뿐이란게 안타깝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있는 힘을 다해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꼭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셔서 다시 힘있는 말로 저희를 위로해 주십시오! 존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노원구에 사는 이외수 작가님을 좋아하는 청년 김진영입니다.
예전에 작가님께서 노원구민회관에 강연하러 오셨을 때 사인도 받고 짧은 이야기도 나눈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신 이외수 선생님께 힘을 북돋아드리기 위해 팬레터를 보냅니다.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던 시절, 언제나 인간다운 정을 추구하시면서 불의를 향해 일침하시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선생님께서 납득하실 만큼 청렴하거나 결백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반성할 점이 있다면 반성하고, 반대로 지켜나가야 할 강점이 있다면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찌 됐건 "만물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 라는 이외수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저 역시 남들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리란 믿음에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사랑받는 것에 인색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시는 이외수 선생님 역시 사랑합니다.
빠른 쾌차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아픔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라는 말씀을 어느 분에게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사랑을 추구한다면 마냥 안락함만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외수 선생님께서 고통 속에서 시름하시는 것만큼, 저도 함께 안타까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외수 선생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저도 희망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실은 저도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의 정동언처럼 내년에 나이 30 되는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예전에는 정동언처럼 말도 더듬은 적이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했지요.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는 편집증 피해망상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암울했던 인생이죠.
하지만 채널러인 정동언에게 함께 교류할 식물들이 있듯이, 지금의 제 곁에도 소통할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외수 선생님께서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고독하게 병과 싸우시는 와중에도 함께 하시는 아들분께서 계시고, 팬분들이 함께 계시니까요.
그렇기에 버틸 수 있으신 것이겠죠.
모든 선한 힘의 원천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기독교 신자인데요.
이외수 선생님의 가치관과 기독교의 가치관이 얼마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존엄함을 신봉하는 점에서는 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존버를 가능케 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독교이자 존버교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함께 존버합시다.
온 몸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항상 응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깊은 심연에 잠겨 아무것도 못하던 시절
모친께서 네가 느끼기에 재밌을 것이라며 쥐어주신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이런저런 토론을 모친과 함께한 후
왠지모르게 나무젓가락으로 먹을 찍어 이런저런 글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던 한 사람은
어쩌다보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은 사람만 이름하는, 나름대로 자만심 가득한 이 호칭은
선생님께 너무도 부족한 호칭입니다.
그런 선생님께
제 무기력한 나날을 지탱해주신 선생님께
제 몇 안되는 힘이라도 가 닿는다면,
저와 같은 사람들의 '존버'가 모여서
그래서 선생님께서 일어나실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고 얘기해주셨던 그 삶의 궤적처럼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게...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님께서 일어나시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현곡입니다.
저를 아실려나 모르겠습니다. 대전에서 마루와 천애객 이렇게 자주 뵈러 다녔는데 거의 2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을 하실런지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참 기억에 남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자주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매체를 통해 선생님 소식을 세심히 들었습니다. 작년에 모임을 하며 성호 형님과 화천의 감성공원으로 뵈러 갔었고 금년초 대전에 사인회로 오셨을 때 잠시 뵙기도 했었습니다. 병환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절이 시절이라 찾아뵙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응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한가지 소식을 드릴 일은 제가 이번에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무예소설문학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3년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은 이전부터 써오기는 했었지만 소설을 본격적으로 쓴 것은 3년전 대전지역의 문학동인에 가입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예전부터 써온 글쓰기에 집중하고자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오다가 이번에 응시하게 되었고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네요.
소설을 쓰면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생각이 없던지라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듣지는 않았으나 밤을 새면서 언듯언듯 들었던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이며 창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들이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인연때문이었을까요? 저 역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은 조선 후기 무인이었던 백동수의 삶을 그린 단편소설입니다. 제목은 "기린을 베다" 입니다. 여기에 백동수가 호흡수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에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용호비결을 넣었습니다. 직접 수련을 하셨던 것이라며 이야기 해주셨는데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작품에 썼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예전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격외선당에서 밤을 새며 놀았던 시간들, 그때 만났던 좋은 인연들이 생각나 한동안 깊은 회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추억은 때로는 힘이 됩니다. 소설을 쓰면서 선생님과 그리고 그때 만났던 인연들과의 추억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저를 계속 쓰게 했습니다. 어쩌면 소설만이 아니라 살아온 내내 그 추억이 힘이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든 시간이 많았던 저에게 즐거웠던 추억이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들 중에 하나였으니까요.
선생님께도 그런 추억이 계시겠지요. 좋은 인연들과 맺었던 기쁘고 즐거운 추억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 힘으로 투병생활을 계속하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디 그 힘으로 잘 견디시고 또 건강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버티면 이긴다는 존버정신으로 잘 버티시고 승리하시길 응원합니다. 회복하시어 예전처럼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제가 쓴 다른 소설들도 봐주시면 좋겠네요. 그런 날들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을 회복하시고 다시 뵙기를 앙망합니다.
대전에서 현곡 박순
안녕하세요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세아이를 둔 엄마 입니다.
대학생인 아이 초등학교 1학년때 강원도 화천으로 선생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대전에서 세아이를 엎고 두아이 등에 배낭을 메어주고 고속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는 지인도 화천의 이기자 부대에 직업군인으로 계시는분이 계셔서 하루 머물고 선생님 뵈러 가려고 머문것이 새벽에 허리 만큼이나 수북 수북 쌓인 눈에 발이 묶어 4일 동안이나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결국 선생님은 뵙지 못하고 대전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는 어릴적 그때 그기억이 엄청나게 많은 눈을 본것이고 그시절 가수 god의 김태우 님이 멀리서 눈 치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랍니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님 보러 갈려고 버스를 질리도록 탄 기억이지요~
아~지금은 고등학생인 저희 아들은 그때 버스안에서 음료수병에 소변을 봤던 기억까지도 저희에겐 좋은 추억이랍니다.
세아이들이 지금은 커서 선생님의 책을 함께 읽고 있답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과 멋진 글귀 너무 감사합니다.
언제나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매 하는 1인으로 선생님의 책을 좋아합니다.
어서 건강 되찾으셔서 밝은 미소 보여주세요.
선생님,
김영철입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선생님께서 다시 일어 나셔서,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저와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간절히 기다립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모두의 기도가 선생님께 좋은 기운으로 전달해 드릴거라 믿습니다.
존버!!
선생님께서 병원에 계신다는 한얼님의 글을 보고 몇자 적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오래 읽어온 독자입니다.
한다발의 시린 사랑이야기를 참 좋아했었지요.
오래 끼고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도 책장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보면서 선생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꼭 회복하셔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얼님의 정성으로 선생님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기도의 힘으로 꼭 다시 일어나시리라 믿습니다.
불현듯 살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는 책 제목처럼
불현듯 다시 일어나셔서 다시 뵈옵기를
다시 한번 선생님의 빠른 회복을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작년 이맘때를 기억하시겠지요 선생님!
작년 오늘은 진주에서 뚜벅이처럼
대형서점들이 차지하여 설 곳
잃고 있는 지역 서점에 힘을 실어 주셨지요.
작년의 오늘은 진주에 계셨지만
작년의 내일은 어디에 계셨었는지 기억하시라고
작년 오늘 계셨던 진주문고입니다.
다른분들이 저의 글을 보고 릴레이 형태로 같은 날짜, 다른 해에 선생님이 계셨던 곳의 소식을 이어받아 올려 주실 것이라 믿고
먼저 시작해 봅니다.
선생님!!!!독자들을 만나 행복하셨던 순간을 드립니다.
존버정신으로 일어나시길 빕니다.
사진출처:진주문고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거의 25년전 선생님 댁에 갔을때 반가이 맞아주시며 무작정 올라온 촌뜨기 터미널까지 배웅까지 해주셨습니다.
지금은제가 독일에 살고있어 찾아뵙지도못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이 소식이 너무나 가슴아프고 슬픕니다.
선생님 다시 일어나실날을 기도하겠습니다!
직접 읽어주신다기에 용기를 내어봅니다
대학생때 낡고낡은 학교도서관에서 빛바랜 벽오금학도를 처음 만났을때..
그 읽어내려감의 가쁜 호흡과 충격은 정말..잊을수가 없습니다 이사람 뭐지? 한국 사람이야? 했던 ㅎㅎ
그런 제가 이제 40대 아줌마가 되었어요^^
너무나 대단한 작품, 흉내낼수없는 정신세계를 살짝 보여주신것 만으로도 저희같은 소생들은 영광일뿐입니다 ㅎㅎ 제게는 그런 영향력이셨어요
문장 한 구절, 단어 하나 속에도, 필체속에도 이외수선생님이 존재해 계시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셔서 이 세상에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두와 함께 있기를 바래봅니다
저도 요즘 코로나에 장사꾼이라 힘이 아주조금밖에 없지만 그 힘을 콩 한쪽처럼 나눌수있다면 병상에계신 선생님께 드리고싶네요^^ 책을 전혀 읽지않는 남편이 서운해하겠지만 ㅎㅎ 제 콩 한쪽 받아주세요 그리고 빨리 웃으시고 쾌차하시기를...
제 세상이 너무 우울해 미칠 것만 같은 고교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괴물이라는 작가님의 책을 만났었습니다.
제 마음을 빚어놓은 것 같은 책을 읽으며
저의 마음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 머리로 제 생각으로는 도저히 설명 되지 않던 저의 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었습니다.
그 책은 저의 온 세상과 같았습니다.
저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저 대신 세상에 소리 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울분에 갇혀 그냥 그대로 쓰러져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났고 분노할 수 있었고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감사했습니다.
그 은혜 간직하며 팬으로서 묵묵히 뒤에서 서있었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글이지만
누구나 작가님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닌 것을 압니다.
감사했습니다.
더 건강하실 때 한번 뵙지 못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좋은 글 귀한 글 마음에 담고 위로 삼으며
살아가겠습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페이스북에 올라오던 계절소식같던 그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세월이란게 마음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나봅니다
늘 tv속 그모습처럼 그 나이속에 계신줄알았는데..이렇게 소식으로 보이는 모습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편지를 씁니다
건강히 잘 이겨내시는 모습보면서 늘 마음으로만 응원했었는데이젠 마음으로 응원만 하기에는 마음이 애달파 이렇게 몇자남깁니다
주름도 감출수있던 그 환한 웃음으로 다시 일어나실거라 믿습니다
회복을 그리고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이렇게 남겨봅니다
제게 남은 기운도 가득담아 보냅니다!!
빠샤!!!!~~~~!!^^
웃으셨죠? ^^*
소설 한 줄 쓰는데 한참 고민하다, 문장이 안 떠오르면 컴퓨터를 꺼버리던 게으른 청년입니다. 모월당에서 글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타지 생활이 두려워 문하생 신청도 못 한 겁쟁이 청년입니다.
하지만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라는 신간을 보며 문득. 글로 이룰 거 다 이룬 분까지 아직도 창작욕을 불태우는 모습에 동경심과 더불어 스스로 부끄러워져서 그만. 천천히 글을 쓴 지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문장 하나하나에 영혼을 담으려 노력한다는 말씀을 아직 기억합니다.
저는 3년 동안 드디어 상업 작가의 길을 뚫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바라는 세속적인 욕망과, 그 욕망을 묘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문장,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평생 작가 소리 못 들어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외수 선생님의 영향 덕분이겠지요.
제 등불 같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쓰러지셨을 땐 많이 놀랐습니다. 모든 저서를 다 살 정도의 열혈작가를 자처하면서도, 한 번도 찾아뵈지 못 한 죄스러움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완쾌하셔서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오실 때, 반드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세계 각지에 퍼진 전염병으로 흉흉한 세상. 만남이 잠깐 미루어졌을 뿐이라 생각하렵니다.
선생님.
다음 해, 전염병이 정복 되고 세상의 흉흉함이 가실 쯤. 그때쯤엔 부디 완쾌하셔서 웃으면서 뵈어요!